2024. 1. 25.

 

 

 

 

윤석열-한동훈 갈등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힘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김경율 국힘당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사과를 요구했는데, 대통령실이 발끈한 것이다. 갈등이 커지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15분 동안 눈을 맞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다가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볼썽사나운 충성 쇼였다.

이번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이미 예상됐던 쇼라는 평이 많다. 국힘당이 총선에서 선방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윤석열 정권과 거리를 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엉성한 쇼

보수세력의 각본은 뻔한데, 배우들이 영 시원찮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문제에 대해서 양보하라는 보수진영의 주문을 흔쾌히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윤 대통령이 디테일한 사람이 아니라서 문제다. 이야기를 들으면, 설령 나중엔 설득이 된다 해도 처음엔 불같이 화부터 내는 게 문제”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1월 23일 김건희가 ‘사과를 하면 민주당의 공격을 받아 오히려 총선이 불리해질 것’이란 메세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충성 인사도 조급하고 과한 듯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갈등 봉합 쇼가 얼마나 급했던지 정작 화재 피해 상인들을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눈이 펑펑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모여 있던 상인들은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갔다.”, “상인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여길 뭐 하러 왔나. 불구경하러 왔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언론들의 평가도 박하다. 경향신문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며 결기를 보이더니 정작 윤 대통령과 만나선 할 말을 못한 채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라고 평했고 한겨례는 “김 여사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언제나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여 인사해왔다”라고 변명했는데, 영 궁색하다.

전체적으로 쇼가 매끄럽지 않고 엉성하게 삐걱대는 모양새다. 연출자, 각본가가 보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주연 배우들을 교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토리 사과’

한편 갈등 국면이 길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사과하면 될 것을, 그것도 못 해서 일을 키우냐는 논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버티던 윤석열 대통령이 마치 대용단을 내린 것 마냥 사과를 단행하고 보수언론들이 사과를 매우 높게 평가해 주는 식으로 마무리하려 들 수 있다. 더불어 사과를 이끌어냈다며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능력과 역할을 높이 포장하려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한대도 기만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전두환 칭찬 발언을 했다가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윤석열은 소셜미디어에 자기가 키우는 개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렸다. ‘사과는 개나 줘라’라는 조롱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문제에 대해 사과해도 그건 ‘토리 사과’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김건희 뇌물 수수는 범죄다. 사과로 그칠 수 없고 수사하여 처벌해야 한다. 특검을 해야 하며, 수사를 총선 후로 미루지 말고 즉시 착수해야 한다.

삼류 드라마 맞은편에선 전쟁 위기가...

지금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힘당은 서로 싸웠다가 화해하는 한심한 삼류 드라마를 찍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위기 상황을 맡겨둬야 한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선 절망적이다.

현 상황을 두고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도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었다.

1950년 5월 30일에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총선 전에는 여당이 다수당이었는데,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총선을 12월로 연기하려다가 미국의 경고를 받고 포기했다. 예상대로 이승만은 2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전체 210석 중 이승만 지지 세력은 57석에 불과했다. 당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는 간선제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재집권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러던 찰나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윤석열 정권이 정권 위기, 특검 위기, 총선 위기를 피하고자 군사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회가 나서서 윤석열 정권의 대결 책동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이다.